인간이 공간을 상상한 방식 : 지도 이전의 지도 🗾 🤖 1. 인류는 왜 ‘여기’를 증명하려 했을까 : 주소의 탄생
🤖 2. 인간이 공간을 상상한 방식 : 지도 이전의 지도 🗾
🤖 3. 시간을 통제한 자가 공간을 지배했다 : 표준시의 발명 🕰️
🤖 4. 💻 IP주소의 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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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는 왜 ‘여기’를 증명하려 했을까 : 주소의 탄생
안녕하세요, BURI입니다 👋 오늘은 인류가 아주 오랫동안 품어온, 그리고 지금도 멈추지 못하는 집착 하나를 얘기해볼게요. 지난 GPS 에 이어 가져온 이번주 주제!
“난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 단순한 질문이 인류의 문명을 바꿨습니다. '주소'는 그 답을 찾으려는 인간의 가장 오랜 시도였지요.
'주소'는 왜 필요할까요?🤔 집이 있고, 회사가 있고, 택배가 찾아와야 하니까? 맞아요.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주소는 단순히 ‘택배 받는 곳’이 아니라 ‘인류가 자신을 세상에 증명하려 한 첫 번째 방식’이랍니다.
오늘은 BURI 가 "주소" 란 것에 대해서 떠들 예정입니다.
고우고우.
🌱 “여기”라는 말이 필요해진 순간
처음엔 아무도 주소 같은 걸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공간을 나누지 않고’ 살던 존재였어요. “저기 강 건너 큰 나무 옆”이면 충분했죠.
그런데 마을이 생기고, 교역이 늘어나면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줬는지 기록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바로 그때, 인류는 깨달아요.💡
“기억만으로는 세상을 관리할 수 없다.”
그래서 공간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죠. 이름이 붙은 순간, 그곳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게 주소의 시작이었죠.💪
🏛️ 주소는 관계를 정리하려는 기술이었다
주소는 처음부터 기술이었습니다 — 돌에 새긴 기록, 마을의 지도, 탁상 위 문서까지.
이건 단순히 ‘길 찾기’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 관계를 정리하는 장치였어요.
누가 이 땅을 소유하는가,
누가 세금을 내야 하는가,
누가 이곳에 산다고 말할 권리가 있는가.
주소는 “공간의 좌표”이자, “사회적 서열표”였습니다. 이름을 붙인 자는 지배했고, 이름이 없는 자는 쉽게 잊혔죠.
🧭 그러나, 주소는 권력보다 오래 남았다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역사는 왕국이 무너져도, 지도는 새로 그려져도, 주소만은 끈질기게 남는 다는거.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누구인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집, 거리, 도시, 국가 — 모두 “내가 속한 곳”을 증명하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태어났죠.
주소란 결국,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려는 방식입니다. 누군가는 그걸 행정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기술이라 부르지만, 그 뿌리는 단순합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한 표시.”
지금 당신이 사는 집의 번호, 스마트폰 속의 위치 좌표, 그리고 브라우저 주소창에 깜빡이는 URL까지.
우린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 ‘핀(pin)’을 꽂으며 존재를 증명하고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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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이 공간을 상상한 방식 : 지도 이전의 지도 🗾
요즘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쓰는 그 물건, 바로 ‘지도’ 이야기로 조금 떠들어보자구.
근데 잠깐, 지도라는 게 원래 이렇게 생긴 게 맞을까?
🤔
🌍 “여기가 어디냐고요?” — 그때는 다들 대충 알았어요. 지금은 스마트폰 꺼내면 바로 나오는 내 위치, 핀 한 번 찍으면 “여기가 나야📍”라고 외칠 수 있죠.
하지만 고대 인류는 달랐. 지도도, 위도도, GPS도 없던 시절엔 세상을 “보이는 만큼”만 이해했어요.
📜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자기 도시 바빌론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고, 그 주위에 강과 산을 동그라미로 그려놓았죠. 그들의 지도는 사실상 “나 중심 우주론”이었어요 😂
이건 단순한 지리 정보가 아니라, 세계관이나 정체성입니다. 지도는 세상을 '측정'하기 보다 '믿음'을 그리는 도구였던 거죠.
🪵 스틱으로 만든 바다 지도?
수천 년 뒤,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항해사들은 지도 없이도 섬과 섬 사이를 정확히 찾아갔습니다. 그들의 비밀은 바로 ‘스틱맵’ 🌴
대나무 막대와 조개껍데기로 만든 이 지도에는 섬의 모양이 아니라, 🌊 파도의 패턴과 해류의 흐름, 별의 각도가 표시되어 있었어요. 놀랍게도 이건 물리적인 지도가 아니라 ‘몸으로 읽는 지도’였습니다. 그들은 파도의 미세한 방향을 감지하며 이 스틱맵을 머릿속에서 ‘느끼는’ 거예요.
“지도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거야.”
— 폴리네시아의 항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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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은 내.속.세 였죠”
중세 유럽의 지도는 지금 보면 귀여워요. 예루살렘이 가운데 있고, 그 위엔 하늘과 천국이 그려져 있거든요 ☁️👼 ‘정확한 거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당시 지도는 세상을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믿는 방식!
사람들은 지리보다 신앙과 상징을 지도에 담았습니다. 이걸 보면 알 수 있죠. 인류는 세상을 정확히 알고 싶기보다, “내가 속한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구. 💭
이 스토리를 보고 무엇을 알게 되었나요? 🤔
지도는 언제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 게 아니라, 그 시대의 세계관, 권력, 가치관을 그린 거예요.
바빌로니아 지도는 “우리가 중심이다”를 말했고, 폴리네시아 지도는 “세상은 감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으며, 중세의 지도는 “세상은 신의 질서 속에 있다”고 말했죠.
결국 지도는 ‘세상’보다 ‘인간’을 보여주는 도구!
그 욕망이 결국 바빌로니아 점토판에서 폴리네시아 스틱맵을 거쳐 지금 내 손 안의 구글맵까지 이어진 거예요. 다음에 지도 앱 열 때 이렇게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
“이건 단순한 길찾기 앱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세상 속의 나’를 찾아온 결과야.”
우린 늘 “세상을 알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던 거죠 📍
근대에 들어서 ‘측량’이 시작되면서 드디어 우리가 아는 정확한 지도가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재밌는 부분이라구. 😄
지도가 정밀해질수록
인간은 점점 더 ‘작은 존재’가 되어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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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구글 지도는 현대의 제국 지도일까?
지금 우리는 매일 구글 지도를 엽니다. 길을 찾고, 맛집을 찍고, 위성 사진으로 세상을 ‘확인’하죠. 하지만 잠깐, 이 지도가 모두에게 같은 세상을 보여줄까요? 🤔
🗺️ 지도는 여전히 ‘누가 그리느냐’의 문제
구글 지도에서 독도를 검색하면? 한국에서는 “Dokdo”, 일본에서는 “Takeshima”로 표기돼요.
대만은 어떤 지도에선 국가, 어떤 지도에선 ‘중국의 일부’로 표시되죠.
👀 결국 지도의 모양은 진실이 아니라 시선의 문제라구. 누가 그리느냐, 어떤 기준으로 수정하느냐에 따라 세상의 형태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전엔 제국이 세계지도를 그리며 국경선을 긋고 ‘이 땅은 내 거야!’라 선언했죠. 지금은 그 역할을 데이터 기업이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정리합니다.”
— 현대의 구글, 과거의 제국.
🛰️ 보이지 않는 경계들
더 흥미로운 건, 지도의 보이지 않는 부분... 구글은 어떤 지역의 위성 이미지를 흐리게 처리하기도 합니다. 군사시설, 왕궁, 혹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구역들...
즉, 오늘날의 지도는 ‘누락의 예술’로 완성되지요. 무언가가 지워지거나 희미하게 표시될 때,
그건 보안을 위한 결정이자 바로, 권력의 작동이에요.
📍 누군가에겐 존재하는 섬이 다른 사람의 지도에서는 아예 사라집니다. 이건 단순한 오차가 아니라,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
📊 데이터가 만든 새로운 제국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이거예요. 과거의 지도는 땅을 정복했지만, 이제의 지도는 데이터를 정복합니다.
구글 지도는 단순한 길 안내 앱이 아니라 우리의 이동, 소비, 검색, 패턴을 모두 기록해요. 그 좌표들이 모여 새로운 디지털 식민지를 만듭니다.
제국의 중심은 더 이상 수도가 아니라, 데이터 서버의 위치가 된 거죠.😨
지도는 여전히 권력의 언어예요. 바빌로니아 점토판이 도시의 신전을 중심에 두었듯, 구글 지도도 ‘데이터 제국의 중심’을 그리고 있죠. 달라진 건 도구뿐이에요 — 점토 대신 데이터, 깃발 대신?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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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간을 통제한 자가 공간을 지배했다 : 표준시의 발명 🕰️
즉 인류가 공간을 ‘상상’으로 다루던 시절을 다루었죠? 그런데요, 인류는 곧 깨닫게 됩니다.
😲
“공간만으로는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세번 째 주제는 시간 이야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국, 시간을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니까요. ⏳
🚂 철도가 가져온 시간의 혼란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도시마다, 마을마다 시간이 달랐어요. 왜냐면 ‘해가 중천에 떴을 때가 정오’였거든요 ☀️
서울의 정오와 부산의 정오는 다르고, 뉴욕과 시카고는 말할 것도 없었죠.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철도가 등장하면서 🚆 “이 기차는 몇 시에 출발하나요?”라는 질문이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생명과 경제의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영국의 철도회사들은 마침내 선언합니다.
“좋아,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자.”
그렇게 1847년, ‘표준시(Standard Time)’가 태어났습니다. 이건 단순히 ‘시계를 맞춘 사건’이 아니라, 세계를 동기화(sync)한 첫 번째 프로토콜이었어요. ⚙️
🌍 시간을 정복하면 공간이 따라옵니다. 표준시는 곧 지도보다 더 정밀한 권력이 되었어요.
지도는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지만, 시간은 “언제 움직여야 하는가”를 결정했거든요.😐
전신망이 깔리고, 전 세계가 선으로 연결되자 ‘어디’보다 ‘언제’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시간표, 항로, 금융 거래, 뉴스 발송, 모든 게 동일한 리듬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죠.
“시간을 통제하는 자가, 결국 공간을 지배하게 되었다.”
표준시는 국경을 넘어선 첫 번째 글로벌 인프라였어요. 모든 나라가 각자의 시간대를 정해야 했고, 그걸 기준으로 도시, 공장, 학교, 군대가 움직였죠.
⛓️ 주소의 전제: 시간의 정렬
흥미로운 건, 이게 ‘주소’의 개념으로도 이어진다는 거!! 주소란 결국, 공간을 정렬하는 방식이잖아요?
그런데 시간의 표준화 없이는 공간의 질서도 만들어질 수 없었어요. 우편, 전신, 철도, 행정 — 모두 “시간에 맞춰 정렬된 공간” 위에서 작동했거든요. 즉,
“시간의 질서가 생겨야, 공간의 질서(주소)도 생긴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사실상 세계의 ‘첫 번째 주소 서버’였던 셈이죠 🛰️
💾 GPS 타임싱크 — 디지털 시대의 그리니치
지금도 표준시는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GPS는 사실 ‘위치 시스템’이 아니라 ‘시간 시스템’이라는거.⌚
위성들은 모두 나노초 단위로 동기화된 시계를 가지고 있고, 그 시차를 계산해 좌표를 추정합니다.
즉, GPS는 “정확한 시간 계산으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기술.” 19세기 철도 회사의 그리니치 실험이 이제는 위성 수천 대 위에서 돌아가는 거죠.
인간이 시간을 맞추는 건, 여전히 세상을 정렬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우리가 “지금 몇 시야?”라고 물을 때마다, 사실은 세상의 거대한 동기화 시스템에 참여하는 셈이에요.
누군가가 시간을 맞추고, 그 시간이 공간을 질서 있게 정렬시키며, 그 위에서 우리의 하루가 돌아갑니다.
📡 표준시는 세상을 하나의 ‘리듬’으로 만든 프로토콜. 그래서 묻고 싶어요 —
“당신의 시간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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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만 있느냐? 놉. "기억" 도 있지.
사람들은 지도를 보고 길을 찾지만, 사실 주소는 기억을 찾아주는 장치이기도 해요. 누군가의 추억, 시대의 흔적, 도시의 상처가 조용히 그 이름 안에 묻혀 있거든요.
🏛️ 1️⃣ 로마, 기억을 ‘도로명’으로 남긴 도시
로마의 거리 이름에는 제국의 자부심이 스며 있었어요. ‘비아 아피아(Via Appia)’ —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라는 정치인의 이름을 딴 도로. 그는 단순히 도로를 만든 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제국의 혈관에 새긴 셈이었죠.
이건 단순한 교통 인프라가 아니라, ‘기억을 영원히 남기려는 권력의 서명’이었습니다.
🏙️ 2️⃣ 파리의 오스망, 기억을 ‘재개발’로 지운 남자
19세기 파리의 시장 오스망 남작은 좁고 혼잡했던 골목들을 허물고 넓은 대로와 광장을 만들었어요. 덕분에 오늘날 파리는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름 없는 골목과 기억들이 사라졌습니다.
📍 길 이름이 바뀌면, 그곳을 기억하던 사람들의 흔적도 함께 지워지죠. 도시의 정비는 곧 기억의 편집이었어요.
🇰🇷 3️⃣ 을지로, 이름이 지켜낸 기억
서울의 을지로는 오래된 간판, 낡은 인쇄소, 쇠 깎는 소리로 살아 있는 거리죠. 하지만 몇 년 전,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을지로의 이름이 바뀔 뻔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어요.
“을지로는 그냥 거리 이름이 아니야.
우리 아버지 세대의 냄새가 남은 공간이야.”
결국 을지로는 살아남았고, 지금도 ‘도시의 기억이 살아 있는 마지막 골목’이라 불립니다. 그 이름 하나가 시대의 기억을 붙잡은 닻이 된 거예요 ⚓
🌍 4️⃣ 식민지의 거리, 이름을 되찾은 기억
많은 식민지 도시들은 독립 후 거리 이름부터 바꾸는 것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예: 인도의 ‘킹스웨이(Kingsway)’는 지금 ‘라즈파트(Rajpath)’가 되었고, 서울의 ‘혼마치’는 다시 ‘명동’으로 돌아왔죠. 이건 단순한 표지판 교체가 아니에요.
“우리가 우리의 기억을 되찾는다.”
라는 상징적 선언이었습니다.
주소는 공간의 언어이자 기억의 문장이에요. 누군가에겐 그저 도로명일지 몰라도, 다른 누군가에겐 그 이름이 한 세대의 풍경을 품고 있죠. 도시는 끊임없이 바뀌지만, 이름이 남는 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지도는 땅을 기록하지만, 주소는 시간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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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IP주소의 탄생
이번엔 인류의 지도 이야기가 드디어 디지털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으로 고고! “주소가 화면 속으로 이사한 시점”으로 떠들어 봅시다.
💻 IP주소의 탄생 — 인터넷은 어떻게 새로운 지리를 만들었나
우리가 매일 쓰지만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주소 이야기의 2막, 바로 IP주소의 세계.
“인터넷 속의 주소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어떤 컴퓨터들은 주소조차 살 수 없게 되었을까요? 🤔
🧮 1970년대, 세상에 없던 ‘보이지 않는 지도’
1970년대 초, 미국의 젊은 엔지니어 몇 명이 ‘세상 어디에 있든 컴퓨터끼리 연결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그렸죠 — 위도나 경도가 아니라, 데이터의 길로 연결된 지도. 그게 바로 우리가 지금 ‘인터넷’이라 부르는 곳이에요 🌐
🧠 그들이 만든 원리는 단순했어요. “각 컴퓨터마다 고유한 번호를 주자!” 이 번호가 바로 IP(Internet Protocol) 주소입니다.
예: 192.168.0.1
이건 단순한 숫자조합이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려주는 좌표라궁.
🏠 IP주소는 인터넷의 ‘집 주소’이자 ‘토지대장’
컴퓨터 하나하나가 건물이라면, IP주소는 그 건물이 서 있는 ‘대지 번호’ 같은 존재예요. 그리고 이 모든 주소는 ‘ARPANET’이라는 초창기 인터넷 지도 위에서 정확히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 1970~80년대 초반, IP주소를 설계한 사람들은 그저 “충분히 많을 거야~”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32비트 체계로 만들었어요 — 즉, 약 43억 개의 주소. 당시 인류의 모든 컴퓨터를 합쳐도 몇만 대 수준이었으니까요. 43억이라면 평생 써도 남을 줄 알았죠.... 😅
하지만…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 주소가 모자라기 시작했거든....
😀
스마트폰, 노트북, 사물인터넷(IoT), 서버, 자율주행차, 냉장고(!)까지 모두 “나도 IP 주소 줘!”를 외치기 시작했어요 📱🥶🚗💡
결국 IPv4 주소는 고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남은 주소는 점점 희귀해졌고, 어느 순간 ‘주소가 거래되는 시장’이 열렸습니다. 💸
💰 디지털 토지 투기의 시대
이제 IP주소는 단순한 기술 자원이 아니라 ‘디지털 부동산’이 되어버렸습니다. 기업들은 수십만 개의 IP를 미리 확보해두고, 나중에 필요한 회사에 “임대”하거나 “판매”합니다. 일종의 인터넷 땅 투기인 셈이죠.
🪙 재미있는 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클라우드 서비스(AWS, Azure) 같은 것도 결국 “IP 주소를 대여받는 사업 모델”이에요. 주소가 곧 권력이고, 연결이 곧 존재가 된 시대.
이건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이 ‘도시를 구획’하던 시절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 그래서 IPv6가 등장. 문제 해결을 위해 등장한 게 IPv6 💫 인데요, 숫자를 128비트로 늘려, 이론상 340간(340 × 10³⁶) 개의 주소를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즉, 지구 위의 모래알, 아니 우주의 먼지 하나하나에도 주소를 줄 수 있는 수준 😮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IPv4 중심이에요. 기술보다 중요한 건 관성, 시장, 그리고 이해관계니까요.
IP주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에요. 그건 인류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정리하려 한 시도, 그리고 디지털 문명 속의 새로운 지도예요.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이 “도시의 신전 중심”을 표시했다면, 오늘날의 인터넷 지도는 데이터 서버, 네트워크 허브, 빅테크 본사를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 이제 세상의 중심은 땅이 아니라, 서버랙 속의 불빛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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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여전히 영토를 그린다”
우린 인터넷이 ‘경계 없는 공간’이라 믿죠? 누구나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고, 화면 속 세상은 평평하고 자유로워 보이죠 🌏💻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곳에도 국경선과 주소 체계가 촘촘히 그려져 있습니다.
🌐 1️⃣ IP주소는 현대의 영토 좌표
예전엔 “이 땅은 내 것이다”를 외치며 깃발을 꽂았지만, 지금은 “이 IP 블록은 우리 회사 거야”라 선언합니다. 국가와 기업은 자신들의 디지털 영토를 구축하기 위해 IP 주소 블록을 확보하고, 보호하고, 때로는 숨겨요.
예를 들어,
IP 주소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적 식별자가 아니라, ‘디지털 주권’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IP란 것의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른 레터 주제로 다룰게요!👋
🧱 2️⃣ 보이지 않는 국경, 보이지 않는 검문소
우리가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 서버는 우리의 IP를 보고 이렇게 판단합니다.
“이 사용자는 한국인이네 🇰🇷, 그럼 이 버전 보여줘야지.”
“이 IP는 이란에서 왔네 🇮🇷, 차단!”
인터넷은 겉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그 아래에는 정치적·법적 경계선이 깔려 있어요. VPN이란 건 결국? 그 경계를 살짝 넘어가는 디지털 여권 같은 거죠 😎✈️
“조용히 다른 나라 주소를 빌려 쓰는 행위.” 랄까.
🏛️ 3️⃣ IANA — 세계 주소의 등기소
그리고 이 모든 질서를 관리하는 기관이 있어요. 이름하여 IANA (Internet Assigned Numbers Authority). 전 세계의 IP주소와 도메인 체계를 관리하는, 말 그대로 “지구의 주소 등기소”입니다. 📜
IANA는 각 대륙별 지역 기관에 IP 블록을 분배하고, 그 아래로 기업·기관·국가가 계층적으로 주소를 배분받습니다. 그 구조는 마치 전근대적 토지 소유 시스템을 닮았습니다. .
루트 서버는 왕의 궁전, IANA는 국토부, ISP들은 지방 영주, 그리고 우리는 그 땅 위의 세입자들....
💰 4️⃣ 디지털 부동산, 연결의 봉건제
IP주소는 한때 “무한히 많을 것 같은 숫자”였지만, 지금은 scarcity(희소성)의 경제학이 지배합니다. 기업들은 주소 블록을 사고팔고, 일부는 미리 사둔 IP로 이익을 얻어요. 마치 19세기 식민지가 “땅 확보 전쟁”을 벌였던 것처럼, 21세기의 기업들은 “IP 확보 전쟁”을 벌이는 중이에요 💸
우린 ‘클라우드’에 살고 있지만, 구름은 사실 주소로 층층이 구획된 영토예요.☁️ 한 나라의 서버는 다른 나라에서 접근할 수 없고, 데이터의 흐름은 여전히 국경을 따른다는 점에서 인터넷은 여전히 지도 위에 그려진 제국!
제국의 깃발은 사라졌지만, IP 블록은 여전히 세상을 구획하고 있다. 🌐
우린 매일 ‘주소 없는 공간’을 떠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주소 속에 살고 있습니다.
📍 집의 번지수, 📶 와이파이 공유기의 사설 IP, 🛰️ 휴대폰의 동적 IP, 💾 서버의 고정 IP —
그건 모두 “나는 지금 여기 있다”는 또 다른 선언이죠. 당신의 집 주소는 현실에 있지만, 당신의 정체성은 이미 데이터 속에 있다.
"주소는, 인간이 존재를 증명하는 마지막 언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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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는
주소 ✌️탄.
다음 주에 만나요!
BURI는 10월 21~24일 동안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KOMARINE 에 참가합니다.
날 보러 와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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